0:09사람이 나이가 들면 근본으로 돌아갑니다. 0:16옛 습관이 나오고 어머니가 요리했던 음식을 먹고 싶어 하지요. 0:27제가 독일에 온 이유는 0:30다른 세상을 만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싶어서였지요. 0:41한국은 당시에 매우 가난한 나라였습니다. 0:45전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 태어났습니다. 0:49너무 어려서 전쟁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. 0:55하지만 제가 독일에 온 1972년까지 한국은 개발도상국이었습니다. 1:06제가 다닌 학교의 수녀님은 당시 늘 혼자 음식을 준비하셨습니다. 그게 마음이 아파 그 분을 도와드렸지요. 1:15그랬더니 월말에 제게 돈을 주셨습니다. 1:18전 너무 기분이 나빠 이건 돈을 줄 일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. 1:23나이가 드신 분이셨기 때문에 존중하는 마음에서 한 일이었다구요. 1:29한국에서는 젊은 사람이 일을 하지 나이드신 분이 하는게 아니라구요. 1:33지금 돈을 주신 것은 모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. 1:45지금까지 50년, 60년간 독일에서 일하신 한국 간호사분들은 1:51고향의 가족을 원할 도덕적 의무가 있었습니다. 1:57그건 강제가 아니었고 그분들이 스스로 내린 결정입니다. 2:00그분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국에서 독일로 와 2:03여기서 가족들을 지원했습니다. 2:06한국 여성들에게는 일반적인 일이었지요. 2:09특별히 대단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. 그냥 당연하게 했지요. 2:14제 이력과 독일에서의 성장을 통해 이 과제가 점점 분명해졌습니다. 2:21물론 간호사로서 사람들을 도왔지만 2:27간호사가 되기 위한 도구로 도운 것은 아니었습니다. 2:32그래서 호스피스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. 2:35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제 질문이었죠. 2:42제가 한국인으로서 회상해보면, 2:44많은 한국적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봅니다. 2:50한국에서는 노인들이 병원이나 양로원이 아닌 집에서 죽음을 맞습니다. 2:57다른 예는 알지 못합니다. 2:58호스피스 병실이 아닌 집에서 눈을 감을 수 있다면 정말 좋습니다. 3:07누구나 집에서 임종을 맡고 싶어 하지요. 3:10그래서 여러 나라 출신 여성 7명과 함께 다문화 호스피스를 만들었습니다. 3:20내가 늙으면 어떻게 할까? 혼자가 되면? 3:25그러면 작은 도움과 지주가 필요할테고, 3:30누군가 시간을 내서 내게 와서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 것 같았죠. 3:41금방입니다. 먼 미래가 아니죠. 3:52제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이런 미덕과 전통을 계속 간직하고 싶습니다. 4:00물론 독일의 장점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. 4:05하지만 꼭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지요. 4:09둘 다 가능하다고 봅니다. 이것이 저의 기회입니다.